인공지능(AI)은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지만, 그 대가로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. 현재의 AI는 마치 거대한 증기기관차처럼 엄청난 연료를 태워 지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. 우리는 왜 지금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며, 다음 세대의 컴퓨터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게 될까요? 그 거대한 전환점을 알아보겠습니다.

1. 뇌와 AI의 ‘지능 가성비’ 격차: 왜 비효율적인가?
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 사이에는 메워지지 않는 거대한 ‘에너지 효율의 벽’이 존재합니다.
- 생물학적 기적, 인간의 뇌: 우리 머릿속의 뇌는 약 860억 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를 가동하면서도 고작 20W 내외(희미한 전구 하나 수준) 의 에너지만 소비합니다. 점심에 먹은 샌드위치 한 조각의 열량으로 온갖 복잡한 감정과 논리적 추론, 창의적 활동을 수행합니다.
- 디지털 폭식가, 현대의 AI: 반면, 인간의 언어 능력을 흉내 내는 GPT-5 같은 모델을 학습시키고 운영하려면 수천 개의 GPU와 수 메가와트(MW) 의 전력이 필요합니다. 이는 수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입니다.
이 효율 격차는 무려 수백만 배에 달합니다. 단순히 더 많은 GPU를 연결하고 더 많은 전기를 쏟아붓는 ‘무차별 대입(Brute-force)’ 방식은 전력망의 물리적 한계와 탄소 배출이라는 환경적 장벽에 부딪혔습니다. 이제 ‘물량 공세’의 시대는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.
2. 현재 패러다임의 해부: 폰 노이만 구조의 한계와 ‘디지털의 덫’
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는 70년 전 설계된 ‘폰 노이만 아키텍처’를 따릅니다. 이 고전적인 방식이 AI 시대에 와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.
① 폰 노이만 병목과 메모리 장벽 (Memory Wall)
현재 구조는 ‘연산 장치(GPU)’와 ‘저장 장치(메모리)’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. AI 모델이 수조 개의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읽어와 GPU로 보내고, 연산 후 다시 저장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해야 합니다.
문제는 이 데이터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소모가 실제 계산에 드는 에너지보다 약 1,000배나 크다는 점입니다. 요리사가 요리하는 시간보다 식재료를 창고에서 꺼내 조리대까지 옮기는 데 시간과 체력을 다 써버리는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.
② 결정론적 하드웨어 vs 확률적 모델의 불일치
AI는 본질적으로 “이 사진이 고양이일 확률이 90%야”라고 판단하는 확률적 추론을 수행합니다. 하지만 디지털 하드웨어는 0과 1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결정론적 논리 회로 위에서 돌아갑니다. 대충 짐작해도 될 일을 64비트의 정밀한 부동소수점 연산으로 수억 번 계산하는 것은 엄청난 자원 낭비입니다. 전문가들은 이를 “결정론적 기계로 확률적 모델을 시뮬레이션하는 비효율성”이라고 지적합니다.
3. 차세대 기술: “컴퓨팅의 물리학을 다시 쓰다”
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전 세계 연구소들은 기존의 디지털 로직을 넘어선 ‘비전통적(Unconventional) 컴퓨팅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.
아날로그 및 인-메모리 컴퓨팅 (In-Memory Computing)
데이터를 옮기지 말고, 데이터가 저장된 장소에서 바로 계산을 끝내버리는 혁신적인 방식입니다.
- 원리: 저항성 메모리(ReRAM) 등에 가중치를 저장하고 전압을 인가하면, 옴의 법칙 에 의해 전류가 흐릅니다. 이 전류 자체가 이미 ‘곱셈’ 결과이며, 배선에서 전류가 합쳐지면 키르히호프의 법칙에 의해 ‘덧셈’이 완료됩니다.
- 효과: 복잡한 행렬 연산이 물리 법칙에 의해 순식간에 끝납니다. 디지털 대비 에너지 효율이 수백 배에서 수천 배까지 향상될 수 있습니다.
키르히호프의 법칙(Kirchhoff’s Law)
회로를 흐르는 전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 법칙입니다. 쉽게 설명하면, ‘물(전류)‘과 ‘높이(전압)‘의 원리로 이해하면 됩니다.
키르히호프의 법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.
1. 제1법칙: 전류 법칙 (KCL, 입구와 출구의 법칙)
“들어온 만큼 나간다!”
회로의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는 전기를 관찰해 보면, 그 지점으로 들어오는 전기의 양과 나가는 전기의 양은 반드시 같습니다.
- 비유: 강물이 흐르다가 두 갈래 길로 나뉘는 ‘삼거리’를 상상해 보세요. 위에서 물 10리터가 내려왔다면, 왼쪽으로 6리터가 갔을 때 오른쪽으로는 반드시 나머지 4리터가 흘러가야 합니다. 갑자기 물이 증발하거나 어디서 솟아나지 않는 것과 같죠.
- AI 하드웨어에서의 쓰임: 아날로그 AI 칩에서 여러 개의 미세한 전류 신호들이 한 선으로 합쳐질 때, 이 법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‘덧셈’ 연산이 이루어집니다. 따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물리적으로 합쳐지는 것이죠.
2. 제2법칙: 전압 법칙 (KVL, 산행의 법칙)
“올라간 만큼 내려온다!”
회로의 한 바퀴(폐회로)를 돌았을 때, 건전지가 올려준 전압(에너지)의 합과 저항들이 깎아 먹은 전압의 합은 같습니다. 즉, 제자리로 돌아오면 총합은 ‘0’이 됩니다.
- 비유: ‘등산’을 생각하면 쉽습니다. 여러분이 주차장(0m)에서 출발해 케이블카(건전지)를 타고 100m 높이까지 올라갔습니다. 그 후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여러 개의 계단(저항)을 거쳐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면, 계단으로 내려온 높이의 총합은 정확히 내가 올라간 100m여야 합니다.
- 핵심: 에너지는 창조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는 뜻입니다.
뉴로모픽 컴퓨팅 (Neuromorphic Computing)
뇌의 ‘스파이킹 신경망(SNN)’ 작동 방식을 하드웨어로 구현합니다.
- 원리: 기존 디지털 방식은 입력값이 없어도 중앙 클럭에 맞춰 모든 회로가 계속 돌아가지만, 뉴로모픽은 특정 자극이 임계값을 넘을 때만 신호(Spike)를 발생시킵니다.
- 효과: 아무런 입력이 없는 빈 공간을 처리할 때는 전력을 거의 소비하지 않는 ‘이벤트 기반’ 작동으로, 센서 데이터 처리나 로보틱스 분야에서 극도의 저전력을 실현합니다.
포토닉스 및 광학 컴퓨팅 (Photonics)
전자(Electron) 대신 빛(Photon)을 사용하여 데이터를 전송하고 연산합니다.
- 원리: 빛의 간섭과 회절 현상을 이용해 수학적 연산을 수행합니다. 빛은 전선 저항에 의한 발열이 전혀 없으며,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이용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동시에 전송할 수 있습니다.
- 효과: 빛의 속도로 연산이 이뤄지며, 칩과 칩 사이의 통신(인터커넥트) 병목 현상을 해결할 강력한 대안으로 꼽힙니다.
4. 시장의 거대한 베팅: ‘언컨벤셔널 AI’가 던진 파장
이러한 기술적 흐름이 단순한 이론을 넘어 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의 투자 사례가 증명합니다. 2025년 12월, 신생 스타트업 ‘언컨벤셔널 AI(Unconventional AI)’의 등장은 기술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.
- 압도적인 자본 투입: 설립된 지 불과 2개월 된 이 회사는 시드 라운드에서 무려 4억 7,500만 달러(약 6,600억 원)를 조달했습니다. 이는 일반적인 하드웨어 기업의 성장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 파격적인 규모입니다.
- 전설적인 팀업: 이 투자가 가능했던 이유는 창업자 나빈 라오(Naveen Rao)의 이력 때문입니다. 그는 이미 두 번의 AI 기업 매각 성공 경험이 있으며, 이번에는 아날로그 컴파일러 전문가인 사라 아슈어(Sara Achour) 교수 등과 손을 잡았습니다.
- 전략적 시사점: 제프 베조스나 a16z 같은 거물 투자자들이 이들에게 베팅한 이유는 명확합니다. 이제 GPU를 수만 개 더 사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으며, “물리학을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로 만드는” 근본적인 하드웨어 혁신만이 AI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.
5. 미래 전망: 이종(Heterogeneous) 컴퓨팅의 시대
미래의 AI 인프라는 단일 칩의 독주가 아닌, 각 기술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가 될 것입니다.
- 학습(Training): 여전히 고도의 정밀도가 필요한 대규모 학습 단계는 고성능 GPU나 차세대 디지털 ASIC이 주도합니다.
- 추론(Inference): 스마트폰, 웨어러블, 자율주행차 등 실시간 전력 효율이 중요한 ‘엣지’ 환경에서는 아날로그 AI 칩이 GPU를 빠르게 대체할 것입니다.
- 통신 및 연결: 데이터센터 내부의 랙 사이를 잇는 고속도로는 포토닉스 기술이 담당하여 데이터 정체를 해소할 것입니다.
- 특수 최적화: 특정 난제 해결이나 초고속 샘플링에는 양자 프로세서가 보조 가속기로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.
6. 결론: 디지털의 시대를 넘어 물리학의 시대로
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의 대결을 넘어 ‘물리학의 싸움’이 되고 있습니다. 뇌의 작동 원리를 빌려오고, 실리콘의 고유한 물리 현상을 계산에 활용하며, 빛의 속도를 제어하는 이 ‘비전통적’ 접근 방식들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.
우리는 지금 컴퓨팅 역사의 가장 급진적인 전환기에 서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.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지능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길, 그 열쇠는 바로 0과 1의 세계를 넘어선 새로운 컴퓨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.